전라북도시각장애인연합회

 ‘사회 속으로 나가고 싶어도 횡단보도조차 건널 수 없어요.’  

전주시 평화동에 시각장애인 박한나(가명·32)씨는 지팡이를 더듬으며 집에서 900m 떨어진 인근 복지관으로 향하는 길이 두렵다. 요가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 매주 두 차례 복지관을 찾지만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만 서면 초긴장 모드로 돌입한다. 

손을 더듬어 기둥에 설치된 음향신호기를 눌러도 횡단보도를 건너야 할 타이밍을 자주 놓치기 때문이다. 음향신호기와 연결된 스피커에서 나오는 안내 멘트의 소리가 작은 데다 음질이 떨어져 주변 차량소음에 묻히기 일쑤다. 

박씨는 “대충 감으로 건너라는 안내 멘트로 생각하고 조심스레 한 발을 내딛는 순간 자동차 경적에 놀라 넘어질 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초록불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는지 알리는 안내 멘트도 잘 안 들려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멈춰서 쭈뼛거리는 아찔한 상황에도 빈번하게 노출된다. 

박씨는 음질이 나빠도 그나마 안내멘트가 나오는 것에 감사한다. 대각선에 위치한 횡단보도는 아예 설치조차 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들의 통행권 증진을 위해 횡단보도변에 설치한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이하 음향신호기) 설치율이 낮은데다 관리도 제대로 안돼 통행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익산참여연대는 3일 정보공개 청구를 통한 ‘14개 시·군 시각장애인용 음향신호기 및 점자블록 설치현황’자료를 공개했다. 자료에 따르면 전북 14개 시·군에 신호등이 설치돼 있는 전체 횡단보도는 모두 4702개소로 조사됐다. 이 중 시각장애인 음향신호기 설치는 706개소(15%)에 불과했다. 

시·군별로 살펴보면 음향신호기가 가장 많이 있는 곳은 군산으로 317개소 횡단보도 중 146개소(46%)가 설치돼 있었다. 반면 김제, 임실, 무주, 장수는 한 곳도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결국 시각장애인들은 차량 소음이나 행인의 인기척 등으로 ‘눈치껏’ 건널목을 건너야 하고 사고위험에도 노출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시각장애인 보행을 위한 유일한 안전장치인 점자블록 역시 관리에 소홀한 것으로 드러났다. 익산참여연대는 지난해 9월께 14개 시·군 시각장애인 점자블록 설치현황에 대해 정보공개요청을 했지만 3개 시(전주, 익산, 군산)만 답변을 해왔다. 나머지 11개 자치단체는 설치현황에 대한 자료 조차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참여연대 김난희 간사는 “음향신호기 설치 증대는 물론 점검인원 충원 등의 방안으로 시각장애인용 통행권을 보장해야 한다”며 “매 순간 길을 건널 때마다 자신의 안녕을 생각해야 하는 처지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행정이 아쉽다”고 말했다. 

김병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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